기미 독립 선언서

기미 독립 선언서는 기미년(1919년)에 발생한 3·1 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이 우리 민족의 독립을 선포한 글이다. 3‧1 운동을 점화한 민족 대표 33인은 종교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다. 손병희 등 천도교 인사가 15명이었고, 한용운 등 불교 인사가 2명이었으며, 이승훈 등 개신교 인사가 16명이었다. 이들은 고종의 인산일(장례일) 즈음인 1919년 3월 1일 탑골 공원에서 대규모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. 당일 갑자기 계획을 바꾼 이들은 일부가 불참한 가운데(민족 대표 33인 중 4명을 제외한 29명이 참가하였다), 태화관이라는 요릿집에 모여 기미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 삼창한 뒤 일본 경찰에 연락해 자진 체포되었다.

기미 독립 선언서의 내용은 학교 수업 시간 때나, 매스컴을 통해 많이 접해 보았을 것이다. ‘오등(五等)은 자(慈)에 아(我) 조선(朝鮮)의 독립국(獨立國) 임과 … ’라는 표현으로 시작하는데, 독립 선언의 배경과 독립의 정당성 및 필요성 등이 잘 나타나 있다. 당시 국외에서 발표된 다른 독립 선언서에 비해서는 온건한 것이 특징이다.

기미 독립 선언서를 작성한 사람이 누군가인가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. 대개 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한 후 여러 명이 교정을 보았고, 한용운이 선언서의 끝부분에 들어간 공약 삼장을 덧붙인 것으로 본다. 이 경우 친일파로 돌아선 최남선 때문에 다소 간의 논란이 되기도 한다.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널리 알린 기미 독립 선언서를 친일파인 최남선이 작성했다니 …… ?

기미 독립 선언서가 작성된 후에는 그 원고가 보성사에 전달되었고, 보성사에서는 35,000여 매의 독립 선언서를 인쇄하였다. 2월 28일부터 전국 각지로 기미 독립 선언서가 배달되었고, 3‧1 운동이 크게 일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. 100년 전 일제의 억압에 맞서 우리 민족의 독립을 선언한 독립 선언서를 다시 한 번 읽어 보도록 하자.

글 : 정훈의

제작과정

스케치 및 1차 시안

독립선언서를 기반으로 디자인을 하였습니다.

1차 시안 샘플

1차 시안으로 샘플을 제작하였습니다.

최종 디자인

1차 시안을 보완하여 최종 디자인을 완성하였습니다.

독립선언서 MD(굿즈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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